유럽 소스의 역사
목차
1. 고대
2. 중세
고대
유럽에서 소스 문화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위해 시작한 것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기 25년경, 한 고대 로마 시인은 시골 농부가 허브, 치즈, 기름, 식초를 절묘하게 섞어 만든 스프레드를 플랫 빵에 바르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 스프레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얼얼하면서도 짭짤하고 향긋한 맛을 동시에 지닌 특별한 조합이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다양한 향신료와 허브를 활용한 음식 문화가 발달했으며, 소스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점점 더 정교해지고 다양해졌다.
이후 200~300년이 지나면서 소스는 로마 상류층의 식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로마 시대의 대표적인 요리서 *아피 키워서(Apicius)*에는 소스와 관련된 조리법이 무려 500가지 이상 수록되어 있으며, 그중 4분의 1 이상이 소스 제조법일 정도로 비중이 컸다. 이는 소스가 단순한 부재료가 아니라, 음식의 풍미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로마 시대의 소스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매우 다채로운 재료가 사용되었다. 기본적으로 허브와 향신료, 식초나 꿀, 그리고 발효된 생선 소스인 *가룸(Grum)*이 포함되었다. 가룸은 생선을 발효시켜 만든 소스로, 특유의 감칠맛과 짭짤한 풍미를 더하는 중요한 재료였다. 당시 로마인들은 가룸을 단순히 소스에 넣는 것을 넘어, 국물 요리나 고기 요리에 활용하는 등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스를 걸쭉하게 만드는 다양한 방법도 연구되었다. 단순히 재료를 갈아서 섞는 것뿐만 아니라, 성게나 간을 으깨 넣어 깊은 풍미를 더하는 방법, 빵이나 페이스트리 조각을 첨가해 점도를 높이는 방법, 순수한 밀 전분을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날것이나 익힌 달걀노른자를 넣어 걸쭉하게 만드는 방법 등 다양한 기술이 활용되었다. 특히 달걀과 전분을 활용한 방식은 이후 서양 요리에서 점점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크림소스나 에멀전 소스(예: 홀란다이즈 소스)로 발전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소스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도구는 막자사발이었다. 단단한 재료를 곱게 빻아 부드럽게 만들고, 여러 가지 향신료와 혼합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였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인들은 향신료와 허브를 직접 갈아 신선한 풍미를 유지하려 했으며, 이러한 방식은 중세를 거쳐 현대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결국, 고대 로마 시대의 소스 문화는 단순한 음식 조합이 아니라, 향신료와 발효 기술, 요리법이 결합한 정교한 식문화의 일부였다. 이후 중세 유럽과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소스는 점점 더 발전하며 현대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소스들도 이러한 로마 시대의 조리법과 개념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중세
아피 키워서 다 활동하던 시대부터 14세기까지의 유럽 요리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14세기 이후부터는 조리법과 관련된 문헌이 점차 증가하면서, 당시의 요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졌다.
이 시기의 소스 제조법은 고대 로마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향신료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재료를 찧고 섞는 데는 막자사발과 막다가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중세를 거치면서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기존의 허브와 향신료 중심의 소스에서 벗어나, 육류와 채소류를 포함하는 조리법이 등장하기 위해 시작했다.
소스를 걸쭉하게 만드는 데 가장 흔히 사용된 재료는 빵이었다. 빵을 노릇하게 구워 색과 풍미를 더하고, 이를 갈아서 소스의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 널리 퍼졌다. 반면, 로마 시대에 사용되던 순수한 전분은 더 이상 활용되지 않았으며, 크림과 버터 역시 이 시기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새로운 맛과 소스의 발전
하지만 이 시기에 소스 문화가 정체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변화와 발전이 나타나기 위해 시작했다.
우선, 로마 시대부터 널리 사용되던 발효 생선 소스(가룸)가 사라지고, 대신 식초와 설익은 청포도즙(제르주·verjuice)이 소스의 산미를 더하는 재료로 자리 잡았다. 이는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유럽인들이 아랍 지역과 교류하면서 요리 문화가 변화한 결과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유럽의 소스에는 계피, 생강, 파라다이스 곡물(구기자 계열 향신료) 등 아시아에서 수입된 다양한 향신료가 새롭게 포함되기 위해 시작했다.
또한, 소스의 질감을 조절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는 곡물이나 빵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 시기부터는 아몬드 같은 견과류를 갈아 소스에 활용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그리고 소스를 더욱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체(여과기)가 필수적인 도구로 추가되었다. 막자사발로 갈아낸 재료를 체로 걸러내면서 거친 입자를 제거하고, 보다 섬세한 소스를 만드는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콩소메와 젤리의 탄생
이 시기에는 단순한 소스를 넘어 고기 육수를 농축하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콩소메(consommeé)와 젤리 형태의 소스가 개발되었다. 특히, 육류나 생선을 젤리로 코팅하면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할 수 있어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이는 식재료의 보존이 중요한 당시 사회에서 매우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젤리는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다. 보다 맑고 투명한 젤리를 만들기 위해, 달걀흰자의 거품을 이용해 미세한 입자까지 제거하는 여과 기술이 도입되었다. 이 방법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한 콩소메나 정제된 육수 요리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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